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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by 황금냥진콩 2025. 8. 29.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 2월. 12~ 1865. 4. 15)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독학으로 성장하여 노예 해방과 연방의 통합을 이끈 인물. ‘위대한 해방자’로 불리며, 인류사에서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 남았다.

 

 

 통나무집에서 백악관까지

 

에이브러햄 링컨은 1809년 켄터키주의 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으며, 학교 교육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링컨은 책을 향한 갈망이 강했고, 촛불 아래서 빌린 책을 밤새 읽으며 독학으로 지식을 쌓아갔다. 어머니 낸시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새어머니 밑에서 힘든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학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법률과 역사서를 탐독하며 스스로 길을 넓혀 나갔다. 청년 시절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성실함과 강직한 성품으로 주변의 신뢰를 얻었고, 결국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그가 세운 작은 법률 사무소는 곧 지역 사회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링컨의 관심은 개인적 성공보다 사회 정의와 국가의 미래에 있었다. 그는 일찍부터 노예 제도의 모순을 깨달았다.

 

 

가난한 백인들조차 인간답게 살기 힘든 사회에서, 흑인들은 소유물처럼 취급되며 매매당했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여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 그리고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노예 제도의 부당함을 꾸준히 비판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남부와 북부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남부는 노예 제도 없이는 경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북부는 점차 노예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였다.

 

링컨은 노예 제도의 즉각적 폐지보다는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도 점진적인 노선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독립선언문의 정신을 그는 정치적 생명의 중심에 두었다.

 

 

결국 1860년, 링컨은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의 당선은 남부 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곧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거대한 내전으로 휘말려 들었다.

 

대통령으로서 링컨은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채 가장 험난한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전쟁의 무게와 함께, 노예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동시에 떠안게 되었다.

 

 

자유와 희생의 대통령

 

 

남북전쟁은 1861년 시작되었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링컨은 전쟁을 단순히 정치적 싸움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이 전쟁이 미국의 영혼을 가르는 시험이라고 여겼다. 1863년, 그는 역사적인 ‘노예 해방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는 남부 연합 지역의 모든 노예를 자유인으로 선포하는 조치였다.

 

당시 이 선언은 군사적 필요와 도덕적 신념이 결합된 결정이었다. 많은 이들은 실현 가능성을 의심했으나, 링컨은 자유가야말로 전쟁의 궁극적 목표라고 믿었다.

 

이 선언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흑인 병사들의 참전을 가능하게 하여 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 같은 해,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열린 추도식에서 링컨은 단 2분 남짓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의 본질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라는 그의 말은 지금까지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전쟁은 길고 고통스러웠지만, 마침내 1865년 북부가 승리하며 연방은 보존되었고, 노예 제도는 헌법 수정으로 공식 폐지되었다. 그러나 링컨은 그 결실을 오래 누리지 못했다.

 

그는 남북 화합과 재건을 구상하며, 패배한 남부에 대한 관용을 주장하였다. “원한은 버리고 친구로 함께 나아가자”는 그의 말은 분열된 미국을 하나로 묶으려는 의지였다. 그러나 1865년 4월, 그는 워싱턴 D.C. 포드 극장에서 암살자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불과 전쟁이 끝난 지 며칠 뒤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국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그의 위대한 사명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는 단순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자유와 평등의 가능성을 증명한 인물로 남았다.

 

링컨의 생애는 가난에서 시작해 세계사의 중심으로 나아간 이야기였다. 그는 교육과 신념,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으며, 지도자로서 개인적 영광이 아니라 인류의 자유를 택하였다.

 

그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진정한 지도자는 권력자가 아니라, 자유와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링컨은 짧지만 강렬한 생애로 인류 역사의 길을 바꾸었고, 오늘날까지도 ‘자유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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