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서대문 감옥의 하늘, 17살 소녀의 외침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대한독립을 외치는 함성이 터졌다. 바로 3·1 운동이다. 그날 이후 전국 곳곳에서 민중들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그 소리를 들은 하나의 이름이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가 바로 유관순이다. 유관순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1902년 12월 16일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속에서도, 가족은 그녀가 바른 가치와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특히 유관순의 부모는 기독교 신앙을 가졌고, 그녀 역시 신실한 믿음 속에서 정직하고 강인한 성품을 키워갔다. 1915년, 유관순은 서울 이화학당(현 이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성에게 교육 기회조차 흔치 않던 시대, 그녀는 학문과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 갈망보다 더 불타오른 것은 조국을 향한 사랑이었다. 일제의 억압과 차별을 학교에서, 거리에서, 신문에서 매일 마주하던 그녀는 어린 가슴에 뜨거운 결심을 품었다.
만세 운동의 불꽃이 되다
1919년, 3·1 독립운동 소식이 들려오자 유관순은 이화학당의 학생들과 함께 만세 시위에 나섰다. 그녀는 태극기를 품고 거리로 나가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사람들 앞에서 직접 연설하며 민중을 이끌었다. 그 용기와 목소리는 당당했고,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다. 3월 5일, 서울에서 시위가 격화되자 유관순은 고향 천안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수천 명의 군중이 모였고, 유관순은 그 앞에 섰다. 태극기를 높이 들고 다시 외쳤다. “대한독립 만세!” 그러나 그날은 평화로 끝나지 않았다. 일제 헌병대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면서, 수십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는 유관순의 부모도 있었다. 현장에서 부모가 쓰러지는 모습을 본 유관순은 슬픔에 무너질 틈도 없이 군중을 보호하고, 다시 태극기를 들었다. 피투성이가 된 소녀가 외친 만세는, 침묵에 빠진 장터에 다시 한번 불꽃을 일으켰다.
감옥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신념
시위 이후 체포된 유관순은 경찰서에서 가혹한 취조를 받았다. 열일곱의 어린 소녀에게 가해진 고문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관순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그녀는 일제 검사의 질문에 당당히 대답했다. “나는 조선 사람입니다. 조선이 독립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죄라면 나는 그 죄를 기꺼이 지겠습니다.” 이 대답은 법정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형무소 안에서도 유관순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수감 중에도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죄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었다. 일제는 그녀의 목소리를 두려워했다. 그래서 더 혹독한 고문과 학대를 가했고, 그녀는 끝내 그 고문으로 인해 심한 내상을 입게 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외친 만세는 감옥의 어두운 벽을 넘어, 밖의 하늘까지 울렸다. 1920년 9월 28일, 유관순은 옥중에서 스러졌다. 그녀의 나이 고작 17세. 소녀의 짧은 생애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날의 외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관순의 장례는 형무소 측에 의해 비밀리에 치러졌다. 가족에게조차 시신이 제대로 인도되지 않았고, 묘지도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 민중은 잊지 않았다. 그녀의 희생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았고, 그 이름은 불멸의 상징이 되었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유관순을 “민족의 누이”, “만세의 영웅”이라 불렀고, 광복 이후 정부는 그녀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002년에는 그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고, 청소년들의 롤모델로 ‘유관순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더 감동적인 사실은, 서대문 형무소에 함께 수감되었던 여성들이 “유관순이 없었다면, 우리는 끝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는 점이다. 고문에 지치고 절망에 빠졌던 동료들은, 유관순의 노래와 눈빛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전했다.
시대를 뛰어넘은 영혼, 유관순
유관순은 한 나라의 지도자도, 대단한 학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 소녀**였다. 그가 가진 유일한 무기는 **진심과 믿음, 그리고 조국을 위한 용기**였다. 그 용기는 일제의 총칼도 꺾을 수 없었고, 죽음도 침묵시킬 수 없었다. 유관순이 외친 “대한독립 만세”는 단지 그날의 외침이 아니라, 오늘까지 이어진 우리 민족의 정신이다. 그녀의 희생은 한국의 독립을 앞당긴 작은 불씨가 되었고, 지금도 대한민국의 교과서에는 ‘유관순’이라는 이름이 가장 빛나는 별처럼 남아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이 한 소녀를 그토록 강하게 만들었느냐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사랑이었다. 조국을 향한 가장 순수한 사랑.**
나라가 힘이없으면 안 된다.. 사람들의 마음에 전쟁이 있고 뺏고 뺏기고 괴롭히는 마음이 계속 있다면.. 지금도 중국이든 미국이든 계속 싸우려고 한다 무엇을 위해서일까? 그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
다시는 이런비극을 격지 않기 위해서 거듭나기 위해서 깔끔하게 아름다운 사랑만으로 가득한 세상까지는 바랄 수는 없지만 더 이상 누군가를 해치고 상처 주는 세상을 피하게 위해서 우리는 꼭 우리만의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청소년들이 싸우지 않는 희생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