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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탈수있는 자동차 기계를 사랑했던 시골소년의 꿈 헨리포드

by 황금냥진콩 2025. 7. 27.

누구나 탈수있는 자동차를 꿈꾸던 시골소년 헨리포드
헨리포드

헨리포드(1863.7.30~1947.4.7)

 미국의 기술자 이자 기업인 포드모터컴퍼니의 창설자

12살에 위독했던 어머니를 위해 말을 타고 이웃도시로 달려가긴 했지만 아무리 빨리 달려도 줄어들지 않는 거리 때문에 학업을 접고 기계공이 되어 최고의 발명가 에디슨회사에서 기숙책임자로 일하다 1903년 퇴사하고 그의 나이 40세에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 포드를 설립하게 된다 
1. 동일한 생산 공정을 반복하는 표준화 
2. 각자 자신이 맡은 부분만 담당하는 분업화
3. 자신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전문화  

제품의 표준화, 부분품의 단순화, 작업의 전문화 3s운동을 전개 이 원칙의 달성을 위해 세계 최초 컨베이어시스템을 만들어 도입

포드시스템을 만듦 

 

4가지 경영지도 원리, 경영철학 포디즘 
1. 미래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존경을 버릴 것
2. 경쟁을 위주로 일하지 말 것
3. 봉사가 이윤에 선행할 것
4. 값싸게 제조하여 값싸게 팔 것



농장에서 태어난 자동차의 혁명가

어린 시절, 기계를 사랑한 시골 소년

헨리 포드는 1863년 7월 30일, 미국 미시간 주 디어본 근처의 작은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포드는 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농부였고, 어머니 메리 리틀은 독일계 미국인이었다. 포드는 어린 시절부터 농사보다는 기계에 더 큰 흥미를 가졌다. 겨우 10살 무렵, 아버지의 시계를 분해했다가 다시 정확히 조립해 놓은 일화는 이후 포드가 “기계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라고 평가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주 농장 기계들을 해체하고 구조를 분석하며 놀았고, 이웃 사람들의 시계를 고쳐주며 어린 기술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술자로의 첫걸음

16세가 되던 해, 포드는 디트로이트에 있는 기계공장으로 수습생 생활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증기기관과 연료 시스템에 대한 기초를 배우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확신하게 된다. 이후 몇 년간 다양한 공장과 워크숍을 전전하며 실력을 쌓은 그는 1891년 에디슨 조명 회사(Edison Illuminating Company)에 입사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밤에는 자신의 작은 작업장에서 실험용 가솔린 엔진을 조립했다. 그는 “말 대신 스스로 달리는 마차”를 꿈꾸었고, 실제로 1896년에는 첫 번째 자작 자동차인 ‘포드 쿼드리사이클(Quadricycle)’을 완성한다.

쿼드리사이클과 에디슨과의 만남

포드는 쿼드리사이클을 만들었지만, 아직 상업적 성공은 멀기만 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을 바꾼 만남이 이어졌다. 1896년, 에디슨 조명 회사의 연례 회식 자리에서 포드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직접 만나게 된다. 포드는 자신의 자동차 발명 아이디어를 에디슨에게 설명했고, 에디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계속하시오, 젊은이. 당신은 옳은 길을 가고 있어.” 그 한마디는 포드에게 용기와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이후 에디슨을 자신의 영원한 멘토로 삼았고, 포드와 에디슨은 훗날까지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처음의 실패, 그러나 멈추지 않은 도전

1903년, 포드는 친구들과 함께 ‘포드 자동차 회사(Ford Motor Company)’를 설립한다. 이전에 이미 두 번이나 자동차 회사 창립에 실패했던 그는 세 번째 도전을 하게 된 셈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고, 고급 자동차를 만들던 다른 회사들과 달리, 저렴하고 튼튼한 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을 고안해 내기 시작한다. 1908년, 그는 드디어 역사적인 자동차를 세상에 내놓는다. 바로 **모델 T(Model T)**였다. 모델 T는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고 튼튼했으며, 운전하기 쉬웠다.

5달러의 혁명

1914년, 포드는 당시 미국 평균 임금의 두 배인 하루 5달러의 급여를 제안하며 노동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 결정의 배경에는 단순한 경제적 계산을 넘어선 신념이 있었다. 그는 “우리 노동자가 우리 차를 살 수 없다면, 그건 진짜 산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노동자와 소비자를 동시에 존중한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제시했다. 이 결정으로 포드 공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장이 되었고,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삶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그들 스스로 포드 자동차의 구매자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판매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포드는 경제학자들이 감탄할 만한 방식으로 ‘노동의 존엄성과 소비의 순환’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산업을 바꾼 사람

포드는 단지 자동차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꾸었다. 그는 조립라인 생산을 도입하여 하루에 수천 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고, 그 방식은 이후 전 세계 모든 제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그의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들어와 일정 시간만 일하면 되는 체계를 확립했고, 이는 현대적인 근로 조건의 기초가 되었다.

 

자동차로 세상을 바꾼 남자의 명암

모델 T, 대중의 발이 되다

1908년에 출시된 모델 T는 단순한 자동차 그 이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자동차는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포드는 이를 평범한 노동자도 가질 수 있게 만들겠다는 신념을 실현했다. 그는 자동차 생산에 '이동식 조립라인'을 최초로 도입하여, 하나의 차량을 만드는 시간을 무려 12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단축시켰다. 생산량이 급증하자 차량 가격은 점점 내려갔고, 모델 T는 최저 260달러까지 가격이 떨어져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진정한 '대중의 자동차'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1927년까지 약 1,500만 대가 판매되며, 모델 T는 세계 역사를 바꾼 대표적인 발명품 중 하나로 기록된다.

길을 포기하지 않은 소년

1915년, 미시간주의 한 시골 마을에 다리가 불편한 열다섯 살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월터. 월터는 자동차를 너무도 사랑했지만, 몸이 불편해 가까운 도시조차 갈 수 없었다. 그의 부모는 포드 본사에 편지를 보냈다. ‘자동차를 보며 희망을 품는 아들에게 직접 공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를 읽은 포드는 공장 견학 차량을 직접 보내 월터를 디어본으로 초청했고, 그에게 특별 제작한 조이스틱 조작형 모델 T를 선물했다. 월터는 이후 ‘포드 특수 개조 설계부’에서 기술자로 일하게 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보조 장비 연구의 선구자가 되었다. 이 감동적인 실화는 “포드는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사실은 ‘길’을 만들어준 사람”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다.

말년의 명암과 정치적 입장

포드는 한때 평화주의자이자 반전 운동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모순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자신의 신문 '디어본 인디펜던트'를 통해 반유대적 논조의 글들을 싣기도 했다. 이 점은 이후 역사적으로 큰 비판을 받게 된다. 그러자 포드는 나치 독일과의 관계를 단호히 끊고 전쟁 발발 이후 미국 정부와 협력하여 항공기 및 군용 차량 생산에 참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수천 대의 전투기 'B-24 리버레이터'를 생산하여 연합군의 전력에 크게 기여했고, 미국의 군수산업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후계자와 기업의 유산

헨리 포드는 1945년, 건강 악화로 인해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손자 헨리 포드 2세에게 회사를 넘겼다. 그의 마지막 말 중 하나는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몰랐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먼저 만들었다”였다. 그는 1947년 4월 7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사람들은 그를 부자로 기억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세상에 속도를 주고, 인간에게 길을 선물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헨리 포드는 “모든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진짜 혁신이라고 믿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하나였지만, **그의 진짜 유산은 ‘포드’라는 이름이 아니라,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라는 개념**이었다. 우리도 포드처럼, **세상의 구조를 바꾸는 아이디어와 진심 어린 제품**으로 사람들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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