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균(1929)
현재에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삼각지붕우유팩은 한국의 에디슨 신석균 이 만들었다. (매스컴을 통해 그의 발명품 중 가장유명한 종이우유팩은 6.25 때 1915년 전반워머에 이어 이루어졌다는 문서가 있다.) 나무위키에서는 도시전설이라고 아니라고 하지만 글쎄 그는 6살 때 이미 창 달린 우산을 시작으로 하여 그가 만든 수많은 발명으로 그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믿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세간에 떠도는 정보만으로 그가 국제적 망신을 시키는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기도 한다.. 1915년 전반워머가 우유팩을 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불편하고 깨지기 쉽고 위생적이지 못한 비싼 유리병을 1950년 초반까지 사용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이런 이야기를 쓰면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겠지...,)
그와의 인터뷰 중에서...
<인터뷰> 김영준(근대 유물 전문가) : "쉽게 펼쳐서 (우유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 위쪽 입구를 펼치는 형식의 종이 우유팩입니다. 발명한 사람이 한국인이죠."
접는 우유팩을 최초로 발명한 이분.
<녹취> 신석균(발명가) : ("우유팩 만드신 분 맞으세요?") "예, 맞습니다. 우유팩을 제가 발명했죠."
매일 한 가지씩 발명한다는 발명가 신석균 씨입니다.
<인터뷰> 신석균(발명가) : "한국전쟁 때 UN군이 들어오면서 미군 PX가 있었어요. 거기서 이런 것을 팔았어요. 여기다 방수용지를 넣고 접어서 물을 넣으면 이것이 컵이 되는 겁니다. 여기다가 밀짚이나 보릿대 같은 빨대를 꽂고 이렇게 접어서 (팩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만 당시는 전시상황이라 안타깝게도 특허등록을 하진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신석균(발명가) : “전 세계 170여 개국에서 현재 이 우유팩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 시절에는 특허 제도 혜택도 없어서 쉽게 말하면 봉사한 것입니다.”
종이 우유팩의 숨은 발명가
우리가 매일 마시는 우유 한 팩. 종이로 된 사각형 포장지를 아무렇지 않게 뜯고, 마시고, 버린다. 하지만 이 작은 일상 속에는 전쟁 속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발명 아이디어를 남긴 한 한국인의 숨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의 이름은 신석균.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한때 '세계 식품 포장 산업에 영향을 끼친 인물'로 주목받았던 사람이다.
1929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신석균은 어려서부터 무척이나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다. 무엇이든 뜯어보고 다시 조립하기를 좋아했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손에 들린 고장 난 라디오나 시계를 보며 언젠가는 크게 될 거라고 믿어주었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곧 닥쳐온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멈춰버렸다.
그가 우유팩의 발병가가 맞다는 충분한 동기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신석균은 서울대 공과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업을 중단하고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전쟁 중, 그는 미군 통역병으로 일하게 되었고, 후방 보급부대에서 식품 포장 관련 업무를 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매일 수많은 우유병을 다루었다. 당시 우유는 대부분 유리병에 담겨 있었는데, 무겁고 쉽게 깨져서 전쟁터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이었다. 미군 PX에 납품되는 웨하스 포장지를 보며 그는 생각했다. "왜 우유도 이렇게 가볍고 위생적으로 포장할 수는 없을까?" 그 작은 물음표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신석균은 그 자리에서 포장용 종이를 구해 직접 접고 실험했다. 우유를 담기 위한 사각 형태의 종이팩은 단순하면서도 접는 방식과 밀봉 방식에 따라 위생과 보존성이 크게 달라졌다. 그는 위쪽을 세모 지붕 모양으로 만들어 마시기 쉽게 하고, 접은 입구를 단단히 밀봉한 형태를 고안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특허를 낼 여유도, 기술을 상업화할 자본도 없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젊은 통역병이 내민 종이 우유팩에 주목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동일한 아이디어가 스웨덴의 식품 포장 기업 테트라팩(Tetra Pak)의 대표 루벤 라우싱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된다.
(스웨덴의 루벤라우싱박사는 1943년 병우유가광범위하게 판매되는 시기에 깨지지 않는 포장용기를 고안 7년간의 연구 끝에 상자를 코팅 밀봉하는 기술을 발명 그리고 1951년 테트라팩의 전신인 AB테트라팩을 설립 사면체 우유팩생산기계를 고안하여 신소재우유팩 테트라팩클래식을 생산 )
나무위키에서 말하는 한참 전에 발명이 진행되었다는 그이야기와 는 너무 다른 이야기다.
루벤라우싱 박사는 테트라팩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제품화에 성공했고, 유럽 전역을 시작으로 150여 국 세계로 뻗어나갔다. 우리가 잘 아는 테트라팩 우유팩은 결국 신석균이 고안한 구조를 핵심으로 삼고 있었는데... 그러나 정작 그 이름은 역사에서 지워지다시피 하였다.
당시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국내에는 그가 남긴 발명조차 관심을 받지 못했다. 세상은 그의 이름을 잊은 채, 매일 아침 사각형 종이팩을 뜯으며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삶도 그의 발명도 세간은 몰랐지만. 연간 수천억 개의 종이팩이 생산되며 식품 산업의 중심 기술로 자리 잡았다. 현재 유럽과 북미, 아시아 전역의 학교, 병원, 공공급식소에서는 대부분 이 구조의 종이팩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가볍게 우유팩을 들고 마시는 그 모습 속에, 한 한국인의 조용한 발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석균의 이름은 여전히 역사 교과서에도, 발명가 명단에도 실리지 않는다. 그를 찾아보아도 생년월일조차 찾기 쉽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묻혀 있었지만, 최근 몇몇 블로그와 다큐멘터리, 그리고 그의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누군가는 ‘증명할 수 없는 이야기’라고 하지만, 정작 그의 삶 속에는 그 어떤 특허 문서보다 강력한 진실이 존재했다.
신석균은 끝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 정확한 시기조차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발명은 여전히 살아 있다. 누군가 습관처럼 종이팩을 접고, 또 누군가는 깨지지 않는 우유팩 덕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실 수 있다면, 그는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 조용히 사람들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묻는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그가 세상을 바꾼 건 사실이 아닌가? 모든 위대한 발명이 그렇듯, 세상은 늘 조용한 손끝에서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신석균, 그는 우리 곁을 스쳐간 조용한 영웅이었다.
5살 때 처음 발명의 세계에 빠져 평생 발명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잠을 잘 때도 발명에 관한 꿈을 연속으로 계속 스토리가 이어질 정도라고..
국제대회수상만 200개가 넘는 세계최다 국제 발명왕 수상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도 올라왔다. 평생 1만여 건의 발명창작으로 국내외 출원한 특허가 4000건이 넘고 특허와 실용신안 의장등록이 1700건에 달한다 신인류가 100년 이상 쓸 수 있는 발명 10개 이상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그는 이미 5개는 이루었다고,,,
평생 5개의 국어로 아이디어가 기록되어 잇는 발명수첩 30권을 30년 동안 썼다는 신석균 님
“제 인생이 발명이니까, 저는 그래요. 발명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이죠. 발명해서 돈 벌어 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인생을 살면서 발명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특이한 발명품을 만들어서 큰돈을 벌면 그때는 좋은 일을 해야죠.”
그와의 남아있는 인터뷰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그의 행복은 도시전설이 아니라 사실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