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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전설 세상에 존재하지않는 가장 부유한 남자 장 께롱 Jean Quéron

by 황금냥진콩 2025. 7. 27.

인터넷전설 세상에존재하지않는 가장부유한 남자 장께롱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장 부유한 남자

잊힌 이름, 그러나 전설이 된 사나이

장 께롱(Jean Quéron). 프랑스어권 세계에서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 이름은, 오늘날 인터넷 어딘가에서 미스터리하게 떠도는 ‘전설적인 부자’로 회자된다. 실제 그의 이름은 어떤 공식 자산 순위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을 하나로 잇다 보면, 장 께롱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실제로 존재했음을 암시한다. 그는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카르카손(Carcassonne)**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 자라며 구두닦이 일을 했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의 젊은 시절은 거의 기록되지 않았고, 돌연 **1970년대 중동 유전 개발 사업에 관여했다는 루머**부터가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그는 누구였는가

장 까롱은 공식적으로 어떤 회사의 CEO나 정부 고위 관료가 아니었다. 그러나 쿠웨이트, 아부다비,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 석유 채굴 계약에 서명한 프랑스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문제는, 그의 이름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이다. 석유 수출의 시작점이었던 1970년대, 장 까롱은 유럽의 자산가들에게 '오일 노트'라는 문서를 발행했다고 전해지며, 이를 통해 **수십 개국에서 석유 채굴의 ‘정보 소유권’을 매입해 재판매**하는 독특한 사업 모델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실제 스위스 바젤 은행에는 'J.Q. series'라는 이름의 수십 개 고정 수익채권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채권들은 소유자가 불분명하고 배당금만 수령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로 인해 장 까롱은 “존재하지 않는 억만장자”, “암흑의 금융 제왕” 등의 별명을 얻게 된다.

 알제리 고아원에 나타난 이름 없는 후원자

1984년, 알제리의 한 시골 고아원에 익명의 후원자가 나타났다. 그 고아원은 당시 전쟁 후유증으로 아이들의 치료와 교육이 끊긴 상태였다. 어느 날 파리에서 온 남자가 찾아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수표 한 장을 놓고 떠났고, 그 수표의 발행인은 'J. Quéron'이었다. 그 뒤 20년 동안, 그 고아원에는 매년 정기적으로 익명의 기부금이 도착했으며, 아이들은 영양실조에서 벗어났고, 작은 학교까지 생겨났다. 한 간호사의 회고록에는 “그 사람은 흰 셔츠에 모자만 눌러쓴 채, 아이들 눈을 오래 바라보다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네가 언젠가 다른 아이들의 빛이 되어주렴’이라고 말한 뒤 떠났습니다. 모두들 신처럼 기억하고 있죠.”라고 적혀 있었다. 이후에도 'J.Q.'라는 이니셜은 터키의 피난민 학교, 시리아의 의약품 창고, 수단의 여성센터 지원 명단에 반복해서 나타나며, 하나의 전설이 된다.

세상에 이름을 남기지 않는 법

장 까롱은 절대로 언론 앞에 나서지 않았고, 공식 회견을 가진 적도 없다. 그가 남긴 단 하나의 문장으로 알려진 메모는 한 금융 변호사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내 부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잠시 그것을 맡아 돌보는 사람이다.” 그 문장은 오래된 은행 문서의 여백에 적혀 있었고,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으나 서명은 없었다. 그러나 필체를 비교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장 까롱의 친필일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수십억 유로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재산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고, 모든 자산은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이름 아래 흘러갔다.

그림자 속에 남긴 유산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지만, 그는 세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장 께롱이 사라지기 전 남긴 마지막 프로젝트와, 그가 오늘날까지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이어가겠다.

세상에 남긴 보이지 않는 유산

그가 만든 세계의 뒤편

1990년대 들어서면서 장 까롱의 이름은 유럽 금융계에서 거의 전설처럼 다뤄졌다. 몇몇 투자 전문가는 그의 이름을 “골드맨삭스도 두려워하는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스위스 바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한 구형 금고에는 ‘J.Q. Private Series’라는 암호화 문서가 다수 보관되어 있었고, 이 문서들은 주로 의료·교육·난민 관련 펀드로 이어지는 자금 흐름의 경로를 담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기금이 **어떠한 국가나 회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 특정 비영리단체나 개인 계좌를 통해 **‘필요한 곳으로만 흘러갔다’**는 것이다. 한 재무 담당자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자금을 떨어뜨릴 줄 아는 유일한 자산가였다”라고 평가했다.

 네팔의 붉은 노트

2001년, 네팔 서부 히말라야 산맥 인근의 작은 병원에 외국인 노인이 입원했다. 그는 말없이 일주일간 머물다 조용히 떠났고, 퇴원 후 병원의 자금 담당자는 병상 아래에서 낡은 붉은 노트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3장의 종이 수표와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태어날 아이들 중 누군가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나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여기에 남은 모든 생이 그대들과 함께 있기를.” 수표의 발행인란에는 ‘J. Quéron’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이 자금으로 병원은 소아과 병동을 개설했고, 수년 뒤 이 병원에서 태어난 한 아이는 프랑스의 NGO와 협력하여 네팔 빈민가 의료봉사를 이끌게 된다. 그 아이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를 고쳐주신 분을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그의 온기가 내 삶 전체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흔적

장 까롱은 2005년경 이후 공식적으로 모든 기록에서 자취를 감춘다. 스위스 프라이빗 뱅크에서는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지시는 ‘계속하라’였다”라고 말하며, 이후 그의 이름 대신 ‘Q 코드’로 기부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다. 그는 죽음을 공표하지 않았다. 장례식도 없었고, 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그가 남긴 약속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수단에서 식수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소녀, 우크라이나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간호사, 필리핀의 기초학교를 운영하는 교사들 중 수많은 이들이 **그의 기금으로 세상과 연결되었다.** 그는 단 한 번도 TV에 출연하지 않았고, 부자 리스트에도 오르지 않았지만, 그가 건넨 따뜻한 손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끌었다.

진짜 부자의 의미

장 까롱은 부를 쌓기 위해 세상을 이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세상을 위해 부를 맡아준 사람**이었다. ‘나눔이 곧 기억이고, 기억이 곧 생명이다’라는 철학을 끝까지 지켜낸 그는, 이제 누구도 그를 직접 부를 수 없게 되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 쉰다. 오늘날 수많은 억만장자가 언론을 장식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이름 없이 사라진 이 남자의 흔적이야말로 진정한 ‘영혼의 자산가’로 기억될 이유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

장 까롱은 증명하지 않았다. 자랑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믿고, 맡기고, 떠났다. 우리도 돈만을  따라가는 그런 사람보다는  **가치와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 되기를  어쩌면 진짜 부자는,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서  돈보다 따뜻함이 먼저인 그런 세상이 빨리 오기를...  (정말 전설일 뿐일까? 자료도 정말 찾기 힘든... 잊히길 바라는 실제인물일까? 그럼 우리는 그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걸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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