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스튜어트
Martha Stewart (1941.8.3~)
미국의 유명 사업가 이자 이른바 살림의 여왕
센스 있는 가사노동비법을 정리한 책으로 대박 본인의 이름을 내건 잡지를 출간 TV쇼까지 출연 2002년 주가조작, 내부자거래에 휘말려 위증죄까지 걸려 5개월 동안 감옥에 수감 이후 재기에 성공. 2015년 직위만 유지한 채 회사를 다른 곳에 팔고 현재도 명성을 유지 활동하고 있다.
평범함 속에 숨은 억대 브랜드의 씨앗
불황 속에서 피어난 실용의 여왕
마사 헬렌 코스튜이라는 1941년 8월 3일, 미국 뉴저지의 노동자 계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폴란드계 이민자로, 마사는 6남매 중 둘째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주부였고, 마사는 어릴 적부터 요리, 재봉, 원예 등을 배우며 자랐다.
특히 모친은 음식은 직접 만들고, 옷은 손수 짓고, 집안 살림은 완벽히 정리하는 ‘살림의 달인’이었다. 마사는 이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우며, 실용성과 미적 감각이 함께하는 감각을 키워나갔다.
청소년 시절에는 모델로도 활동하며 사교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드러냈고, 대학은 바너드대학(컬럼비아대 계열)에서 건축사와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다.
증권 브로커에서 홈 스타일 전문가로
졸업 후 마사는 금융회사에서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게 된다. 당시 여성의 금융업 진출은 매우 드물었으며, 마사는 그 안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직장인의 삶보다 **자신의 감각을 살려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고, 남편 앤디 스튜어트와 함께 코네티컷에 농가 주택을 구입해 리모델링을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녀는 직접 정원 가꾸기, 요리, 집 꾸미기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조언과 팁을 나누기 시작했고**, 이는 곧 책과 잡지, 방송으로 이어지는 첫 발판이 된다.
작은 케이터링 회사에서 시작된 꿈
1976년, 마사는 지인의 부탁으로 결혼식 케이터링을 맡게 된다. 그녀는 단순한 요리 제공이 아니라, **현장에 맞는 테이블 연출, 꽃장식, 손님맞이용 카드**까지 세심하게 준비했고, 손님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후 그녀는 작은 케이터링 회사를 창업했고, 오직 입소문으로만 수십 건의 주문이 이어졌다. 한 고객은 인터뷰에서 “마사는 요리를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기억을 디자인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마사에게 “일상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확고히 심어주었고, 그녀의 브랜드 철학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출판과 방송, 브랜드의 탄생
1982년, 마사는 첫 요리책 『Entertaining』을 출간하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레시피를 넘어서 **파티 스타일링, 테이블 세팅, 집 안 연출까지 포괄한 생활 미학서**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Martha Stewart’s Quick Cook』, 『Weddings』 등 연이어 출판하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잡는다.
1990년대에는 NBC와 계약해 **‘마사 스튜어트 리빙(Martha Stewart Living)’ TV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동시에 동명 잡지도 창간하며 브랜드를 확장해 나간다. 그녀는 ‘살림’이라는 단어에 **기획력, 감성, 품질**을 더해 산업으로 키워냈고, 점차 홈 쇼핑, 침구, 가구, 부엌용품 등 다양한 상품군에 ‘Martha Stewart’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다.
홈 브랜드로 일어선 억대 CEO
1997년, 마사는 자신의 회사를 **‘Martha Stewart Living Omnimedia’**라는 이름으로 기업화하고, 이듬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킨다. 그녀는 여성 창업가로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기업으로 성장시켜**, 상장 첫날만 해도 시가총액이 13억 달러를 넘겼다.
이후 마사는 단순한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진정한 CEO이자 사업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녀는 브랜드 관리를 철저히 했으며, 상품 하나하나에 직접 의견을 제시했고, “내 이름은 내 신용”이라는 철학을 기업문화에 담았다.
추락과 재기를 넘어, 브랜드가 된 여자
내부자 거래 사건, 이미지에 타격을 입다
2001년, 마사는 바이오테크 회사 ‘이 멜클론(ImClone)’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해당 회사가 FDA의 신약 승인 거절 소식을 받기 직전 보유 주식을 급매도한 사실이 알려지며 의혹이 커졌다.
2003년, 미국 연방검찰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와 허위 진술** 혐의로 마사를 기소했고, 이듬해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그녀는 2004년 10월부터 웨스트버지니아의 연방교도소에서 **5개월 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미국 내에서 여성 CEO가 감옥에 가는 드문 사례였고, 특히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사용하는 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당시 주가는 폭락했고, 마사의 이미지 역시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에서 ‘불명예 CEO’로 추락했다.
감옥 속에서도 희망을 심은 마사
그러나 마사는 수감 중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동료 수감자들에게 요리와 재봉을 가르쳤고, **‘마사의 감옥 정원’이라는 작은 텃밭**을 만들어 유기농 채소를 함께 재배했다.
한 수감자는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다시 사람처럼 느껴지게 해 주었다. 감옥 안에서도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믿게 했다”라고 회고했다. 마사는 출소 후 “그곳은 내 인생의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시간이기도 했다”고 밝히며, **자신의 실패를 숨기지 않고 껴안는 태도**로 다시 대중 앞에 선다.
출소 후 복귀와 브랜드의 회복
2005년, 마사는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TV 복귀작 는 성공적으로 론칭되었고, 다양한 협업 상품을 재출시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점차 회복되기 시작한다.
특히 K마트와의 협업으로 시작된 마사 홈 브랜드가 다시 판매 호조를 보였고, 온라인 쇼핑몰, 레시피 앱, 소셜미디어 채널까지 다방면으로 확장된다. 그녀는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퇴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처럼, 다시 자신만의 무대로 돌아왔다.
시대를 초월한 라이프스타일 아이콘
2010년대 들어 마사는 오히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쿨한 여성 CEO’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힙합 아티스트 스눕 독(Snoop Dogg)과 요리 예능을 함께 진행하며, **유머와 겸손, 자기반성의 태도**로 새로운 팬층을 확보한다.
이후 마사는 CBD 식품, 친환경 정원용품, 반려동물 제품 등 최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에 맞춘 브랜드 확장으로 계속 변화에 적응했다. 2020년대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녀는, “변화는 피할 수 없고, 피하지 말고 껴안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마사의 유산: 브랜드, 철학, 그리고 인간성
마사 스튜어트는 단지 사업가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산업으로 만든 창시자**였다. 그녀는 실패를 겪고도 자신을 재정의했고, 수많은 여성 창업자와 크리에이터들에게 “자기 이름으로 브랜드를 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실수도 브랜드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진심으로 증명한 인물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성공은 꾸준함과 회복력, 그리고 진심에서 온다.”
마사는 잘 꾸미는 사람 이라기보다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 라이프스타일의 브랜드화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는 재기의 모습까지... 우리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