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金佐鎭, 1889년 11월 24일 ~ 1930년 1월 24일)은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의 군인이다
청산리대첩의 위대한 승리 김좌진 장군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조선의 장군이다. 그는 청산리 대첩을 이끌며 독립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였고, 철저한 무장 준비와 불굴의 의지로 조국의 자주권 회복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었다.
김좌진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한 성격으로, 부잣집의 도련님이었지만 사회 불평등과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는 정의감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는 18세 때부터 계몽운동과 애국계몽단체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일찍이 신교육을 받아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20대 초반, 그는 신민회에 가입하여 독립운동 노선을 구체적으로 갖추게 되었고,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독립군 부대를 조직하고, 자금을 모으고, 병사들을 교육하였다. 그는 단순히 싸우는 장수가 아닌, 독립군을 하나의 군대로 체계화한 조직가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은 보다 적극적인 무장투쟁으로 전환되었다. 김좌진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의 독립군 부대들을 통합하여,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총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그는 무기와 병사 훈련, 군율 정비, 전략 수립에 있어 철저하고 엄격하였다. 그의 지휘 하에 독립군은 단순한 게릴라 집단이 아닌, 진정한 민족군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1920년, 역사적인 청산리 대첩이 벌어졌다. 일본군이 간도 일대를 침공하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자, 김좌진 장군은 즉각 군을 이끌고 대응하였다. 그는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과 함께 연합하여 청산리 일대의 산악 지형을 이용한 전투를 계획하였고,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총 10여 차례에 걸친 전투를 벌였다.
청산리 대첩은 조선 독립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였다. 일본 정규군 수천 명이 대거 투입되었지만,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군은 뛰어난 기동력과 게릴라 전술로 대응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일본군 1,200명 이상을 사살하고 독립군의 피해는 극히 적었으며, 이 전투는 전 세계에 독립운동의 저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청산리 대첩은 단지 전투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이 결코 무력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일제에 맞설 수 있다는 증명이었다. 김좌진 장군은 “조선의 독립은 우리가 싸워 쟁취해야 한다”라고 외쳤고, 전투 후에도 민간인 보호, 부상병 치료, 전투 윤리 등을 철저히 지키며 명예로운 지휘관으로 존경받았다.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병사들의 회고에 따르면, 김 장군은 항상 병사들과 함께 땅바닥에서 잠을 자고, 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전투 전날 밤이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두려우냐? 괜찮다. 조국이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라는 말은 병사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항일무장투쟁과 청년교육. 운동
청산리 대첩 이후 김좌진 장군은 일제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었다. 일본군은 보복 차원에서 간도참변을 일으켜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독립군을 소탕하려 하였다. 이에 김 장군은 병력 일부를 이끌고 서간도로 이동하여 독립군 재정비에 힘썼으며, 새로운 무장세력과 연대하여 항일 투쟁을 지속하려 했다.
하지만 독립운동 내에서도 내부의 이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주의계와 민족주의계의 노선 충돌은 독립운동의 효율성을 저해하였고, 김좌진은 이를 아파하며 “우리는 적보다 내부 싸움이 더 무섭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오직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에 집중하려 했지만, 현실은 복잡하고 어려웠다.
김좌진은 1925년 이후, 북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면서도 교육과 청년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이 아니다. 미래 세대를 키우는 것도 또 하나의 전쟁”이라 말하며, 청년들에게 독립의 의미와 민족혼을 가르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러한 활동은 그의 새로운 전장이 되었고, 조선 청년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30년 1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였다. 김좌진 장군은 북만주에서 암살당하였다. 그는 회의 참석차 이동 중이었으며, 조선인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피격당하였다. 당시 이 사건은 독립운동 진영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단순한 개인의 원한을 넘어 정치적 배경이 얽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 항상 우리는 밀정. 내부 공산주의자에게. 같이 민족 때문에.. 더 큰 고비를 가지게 된다.)
김좌진의 죽음은 독립운동사에 커다란 공백을 남겼다. 그는 무장투쟁의 상징이자 실제 전투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가진 인물이었고, 그의 존재는 수많은 독립군들에게 정신적 기둥이었다. 특히 그의 죽음은 내부 이념 갈등의 비극을 상징하는 사건으로도 남았다.
그의 장례는 동료들과 지역 주민들에 의해 조용히 치러졌으며, 수많은 청년들이 그의 묘소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김좌진 장군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 하였으며, 그의 묘소는 충청남도 홍성에 조성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이 참배하고 있다.
김좌진 장군은 단지 전투의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싸운 전사이자, 후세를 생각한 교육자이며, 통합을 꿈꾼 지도자였다. “조국의 독립은 우리 모두의 일이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는 그의 유언은 오늘날까지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그의 삶은 하나의 투쟁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의 정의감, 청년 시절의 결단, 장군으로서의 전투, 그리고 말년의 청년 교육까지, 김좌진의 생애는 일제에 맞서 조국의 이름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분투였다. 그는 누구보다 강했고, 누구보다 따뜻했으며, 누구보다 철저히 조국을 사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배울 수 있는 이 모든 배경에는 김좌진 장군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해야 하며, 그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김좌진 장군은 죽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우리 역사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싸움은 끝나고 독립은 했지만 아직도 친일파가 활동하고 있어요 역사를 왜곡하고 있어요...
1. 반일 종족주의 저자그룹 -대표인물 :이영훈, 주익종, 김낙년 등 반일종족주의 2019년 출간/ 일제강점기 조선의 착취를 부정하거나 축소/위안부문제 강제징용등에 대한 왜곡된 주장전개
2. 뉴라이트 계약 일부단체 -대표단체: 자유주의연대, 바른 사회시민회의, 시대정신등
-특징 / 일제강점기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친일 행위자에 대한 비판축소, 반공 '시장자유우선 논리강조
3.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일부인사
지만원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으로 논란)
나경원(친일파 후손 관련발언 및 논쟁)
일부정치인들의 역사 교화서 국정화시도
4. 극우 유투버 및 인터넷 커뮤니티 일부
일베저장소(역사왜곡, 위안부모욕등 극단적 표현다수)
극우유튜브채널들(역사적 사실부정, 친일미화 콘텐츠 유통)
실제로 위안부 모욕죄로 처벌받은 사례도 존재
5. 고교 한국하 교과서 국정화시도 (2015년 박근혜정부)
1. 정진석 국민의힘의원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 일본은 조선왕조와 전쟁을 한적 없다"
2.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최근 제주 방문자리에서 "4.3은 남로당 총파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발언했다가 민. 관이 함께한 총파업이었고 공산당 폭동처럼 왜곡했나는 비난이 제기
3.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국민의힘 대선후보)
"일제강점기 선조들은 일본국적이었다."
"한국의 산업발전은 일본의 도움 덕분 "이라고 말하며 대한민국의 자주적 노력과 역사를 부정 준비된 극우 검증된 친일파라는 비판을 받음
서경덕 교수의 제보로 SRT 특실 간식박스 상자에 거북선 뒤 일장기 가 달려져 있는 것이 확인 SRT 문제의 간식박스 전략회수 및 폐기조치를 함 제작업체 계약 재검토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한다는데 몰랐다고? 모른다고?.......
(배응망덕한 인간들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파렴치하게.. 그런 발언을 하고 이런 일들을 저지를 수 있을까?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태어나서 가족들과 밥 먹으면서.. 이곳을 지키려고 나라를 지키려다 순국한 사람들/ 위안부할머니들 /강제징용으로 죽어간 조상들 /가족을 잃고도 광복을 못 본 수천만의 슬픔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안고 돌아가셨는데. 본인들의 호의호식에 눈이 멀어서.. 용서받을 생각 하지도 말고 꼭 그만큼 죗값 받기를 꼭... 이번생 안에는 전부 받을 수 없겠지만 대대손손 꼭 전부 벌 받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