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 아키오 (1921.1.26~1999.10.3)
일본의 기업인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소니 ‘SONY’‘SONY’를 창업한 공동창업주
폐허 속에서 소리를 일으킨 전통가문의 이단아
모리타 아키오는 1921년 1월 26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근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14대째 이어온 사케 양조장이었고, 장남인 아키오는 어릴 때부터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러나 아키오는 기계와 전자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따라 과학 원리를 공부했고, 중학교 시절에는 이미 자신의 작은 실험실을 만들 정도로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 도쿄제국대학(현 도쿄대학)의 물리학과에 진학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해군 기술장교로 복무하면서 음파 탐지 기술과 통신 장비 개발에 참여하게 된다.
폐허 위에 지어진 ‘꿈의 회사’
전쟁이 끝난 직후, 일본은 폭격으로 인해 산업 기반이 무너진 상태였다. 1946년, 모리타 아키오는 물리학자 이부카 마사루와 함께 도쿄의 한 허름한 백화점 창고에서 작은 회사를 시작한다. 회사 이름은 ‘도쿄통신공업주식회사(東京通信工業株式会社)’였고, 직원은 20명 남짓이었다. 초기 자본금은 19만 엔에 불과했고, 당장 팔 수 있는 제품도 없었다. 하지만 이부카와 모리타는 확신하고 있었다. “세상에 없던 전자제품을 만들어, 일본을 다시 세우자.” 그들의 첫 제품은 전자쌀밥솥이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어서 만든 **카세트형 자기 녹음기**는 일본 교육 현장과 방송국에서 서서히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소니’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
1955년,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지사를 설립한 이들은 새로운 브랜드명이 필요했다. 모리타는 ‘Sound’와 라틴어 ‘Sonus’, 그리고 ‘소년’을 의미하는 ‘Sonny’를 결합해 ‘SONY’라는 이름을 직접 만들어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는 일본 이름만으로는 안 된다”며, 일본인 최초로 자사 제품에 영어 브랜드를 붙인 파격을 감행했다. 그 결정은 대성공이었다. 소니는 세계 시장에서도 발음하기 쉽고,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되었고, 이후 세계 전자 제품의 상징 같은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로 전한 희망
1957년, 소니는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 'TR-63'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소형화된 라디오로, 언제 어디서든 음악과 뉴스를 들을 수 있게 만든 혁신적인 기기였다. 이듬해, 규슈 지방의 한 고등학생이 이 라디오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병든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외롭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결국 라디오를 사서 어머니 곁에 두었고, 어머니는 매일 음악 방송을 들으며 생을 마감했다. 그 사연은 방송국을 통해 전해졌고, 모리타 아키오는 해당 소년에게 손 편지를 보내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의 이야기가 내게 전자제품의 진짜 의미를 알려주었다”라고 적었다. 이 실화는 이후에도 소니 사내 교육에서 “고객의 삶에 깊이 들어가는 기술”의 예시로 소개되었다.
소니의 철학: 발명은 필요에서 시작된다
모리타는 단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전에, 우리가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를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하며, 기존에 없던 기기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예를 들어, 소니의 워크맨은 사람들이 “이동 중에 음악을 듣는다”는 개념 자체를 만들었고, 이는 음악 소비 습관을 전 세계적으로 바꿔놓은 혁명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일본 기업 최초로 직원들에게 ‘성과급’ 제도를 도입했으며, 평등한 회의 문화와 자율성 중심 조직 문화를 장려했다.
워크맨으로 세계를 흔든 창조자
소니 워크맨, 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들다
1979년, 소니는 기존 전자업계에서 ‘성공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던 기기 하나를 시장에 출시한다. 바로 ‘워크맨(Walkman)’이었다. 이부카 마사루 회장이 “비행기 안에서도 클래식을 듣고 싶다”라고 제안한 데서 시작된 이 기기는, 녹음 기능 없이 단순히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에 불과했다. 당시 내부에서도 반대가 거셌다. “녹음도 안 되는 기계를 누가 사느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모리타 아키오는 “사람들은 이동 중에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워크맨은 첫 해에만 3만 대 이상 판매되며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었고, 곧이어 전 세계 젊은이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워크맨과 함께 걷는 아버지
1981년, 미국 시카고의 한 지체장애인 부자가 일본 여행 중 소니 매장에서 워크맨을 구매했다. 아들은 한쪽 다리가 불편해 늘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습관이 있었고,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워크맨으로 처음으로 ‘자신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듣게 되면서, 아들은 매일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소니에 감사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는 본사 교육자료에 인용되었다. 모리타 아키오는 사내 회의에서 해당 사연을 소개하며 “우리는 기술이 아닌 **자존감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워크맨은 단순한 기계를 넘어, **사람에게 자유와 자신감을 선물한 제품**이 된 것이다.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장
1980년대, 소니는 일본 기업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사 ‘콜럼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며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도 발을 넓힌다. 전자제품뿐 아니라 콘텐츠와 음반, 영화까지 아우르는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 변모하면서, 소니는 세계 시장에서 애플, 필립스, 삼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모리타는 브랜드의 일관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제품 포장부터 광고, 해외 매장 인테리어까지 직접 확인할 정도로 디테일을 중시했다. 그는 “소니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삶의 질을 디자인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고, 이는 소니의 글로벌 브랜딩 철학이 되었다.
말년과 그의 마지막 메시지
1993년, 모리타는 건강 문제로 CEO 자리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그는 일본 기업들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 리스크 회피 성향을 비판하며, “창의적인 실패가 없는 회사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을 자주 남겼다. 1999년, 모리타 아키오는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장례식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추모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모리타는 기술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은 최초의 장인이었다”고 언급했다.
우리가 배울수 있는 점
모리타 아키오는 단지 전자제품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일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을 실현한 창조자**였다. 그는 늘 불편함을 기회로 바꾸었고, 사람들이 미처 원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습관을 선물했다. 우리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을 조금 더 표현하고 개선한다면 사람들의 감정, 일상, 삶의 질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감성 기술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더 좋은.. 편한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하니까........
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