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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비운의 여성 천재시인 허난설헌 허난설헌 허초희 (1563~1589.5.3)시인, 화가, 문장가꽃처럼 피어난 천재 소녀 허난설헌은 1563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초희, 자는 결번이며, ‘난설헌(蘭雪軒)’은 그녀가 지은 호였다. 그녀의 집안은 명문가로, 오빠는 조선 최고의 학자 허균, 아버지 허엽 또한 고위 관료였다. 어린 허난설헌은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자라며 유교 경전, 한문 시, 문학을 자유자재로 읽고 썼다. 여덟 살 무렵 쓴 한시가 집안 어른들을 놀라게 했고, 열세 살에는 시집에 실어도 손색없는 시를 완성했다. 그녀의 재능은 단순한 ‘신동’이 아니라, 정제된 문학성과 감정의 깊이를 지닌 완성된 시인이었다. 꽃이 진 날, 한 줄 시로 모두를 울리다 열 살 무렵, 봄비가 온 뒤 낙화가 흩날리던 날이었다. 허난설헌은 홀로 마루에 .. 2025. 7. 25.
웃음을 선물하는 조선의 천재화가 김홍도 김홍도(金弘道, 1745 ~ 1806?)는 조선 후기의 풍속 화가이다 붓 하나로 조선을 웃기고 울린 화가 김홍도는 1745년 안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으며, 여덟 살 무렵에 그린 매화 그림이 우연히 관찰사의 눈에 들어 조정에까지 전해졌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그림은 정밀하면서도 생동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의 감정을 담아내는 데 탁월했다. 조선 후기의 유학적 경직성 속에서도, 김홍도의 붓끝은 늘 백성의 삶과 웃음을 향해 있었다. 서민의 장터, 어린아이의 말썽, 주막의 술잔까지도 그의 그림 안에서는 하나의 살아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왕 앞에서 웃음을 선물하다 김홍도가 30세 무렵, 정조는 그를 불러 어좌 앞에서 그림을 그려보라 명했다. 다른 화사들은 다소곳이 .. 2025. 7. 24.
율곡이이의 어머니이자 스승,조선의 예술인 신사임당 예술과 덕성을 함께 지닌 여인1504년강릉 외가에서 태어난 신사임당은 본명 신인선, 사임당은 그녀의 호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당대 드물게 부친에게서 유학과 한문, 시서화 등 모든 학문을 교육받을 수 있었다. 특히 외할아버지 집에는 고서와 명화, 문방사우가 가득했으며, 신사임당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와 그림, 자수를 익히며 예술혼을 키워갔다. 열두 살에 지은 시와 그린 포도 그림은 이미 어른들 사이에서 감탄을 자아냈고, 한문도 능숙히 구사해 부친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글을 배울 정도였다. ‘여자이지만 문장과 덕성은 군자에 가깝다’는 평이 따랐다. 시어머니를 위해 바느질한 밤 열일곱에 율곡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와 결혼한 그녀는 한 번도 시댁살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특히 시어머.. 2025. 7. 24.
백성을 위한 사랑의 명의 동의보감의 저서 허준 허준(許浚, 1539~ 1615. 10. 9)은 조선 중기의 의관·의학자이다.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한 의원1539년, 조선 중종 34년. 허준은 서울 동대문 인근에서 평민 출신의 중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의관 집안으로, 아버지 허론은 관청에서 의술을 펼치는 관상감 소속 의원이었고, 허준도 자연스럽게 의술을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신분의 벽은 높았다. 유교 사회에서 중인은 관직으로의 진출이 제한되었고, 의술은 양반 계층에서 천하게 여겨지는 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일찍부터 “병이 있는 자는 모두 귀하다”는 철학을 품고, 명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아닌 실력과 진심으로 조선 최고의 의원이 되어간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환자의 손을 잡다 젊은 시절 허준은 지방 관.. 2025. 7. 23.
조선의 개혁을꿈꾸던 선비 백성에대한 사랑을 목민심서로 정약용 정약용(丁若鏞, 1762~1836 4.7)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이다. 2012년,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3]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젊은 선비1762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개혁가였다. 그의 가문은 남인 계열로 학문과 청빈한 삶을 중시했으며, 어린 정약용은 일찍부터 유교 경전을 익히며 총명함을 드러냈다. 15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18세엔 성균관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유학적 관념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았고,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실사구시의 철학을 품기 시.. 2025. 7. 23.
조선최초의 정규유학생에서 임시정부 외교사령탑 그리고 월북까지.. 김규식 김규식 (金奎植, 1881. 1. 29~1950.12.10) 학자·종교인·교육자,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정치인·학자·시인·사회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서양 문명과 조선의 미래를 동시에 껴안은 청년1881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김규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주목받았다.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의 눈에 들어 그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며, 조선 최초의 정규 유학생 중 한 명이 된다. 김규식은 어린 나이에 타국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근면함과 신념으로 미국 남장로교 신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에게 서양은 단순한 선진 문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을 바꿀 가능성이자, 언젠가 고국을.. 2025.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