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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 대한민국1호 기업가 유한양행 유일한 유일한 (1895.1.15~1971.3.11) 기업인,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회 사업가이자 유한양행의 창업주 겸 초대 회장 조선 청년, 미국 땅을 딛다189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유일한은 가난하지만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 유기준은 기독교 선교사였으며, 유일한에게 늘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어린 유일한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신앙심 깊고 책임감 강한 아이로 자랐다. 1904년, 아홉 살이 되던 해, 그는 미국인 선교사인 언더우드 부부의 주선으로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어린 소년이 태평양을 건너 낯선 땅에서 살아야 했다. 돈도, 보호자도 없이 시작된 미국 생활은 그야말로 고된 시련의 연속이었다.처음 미국에 도착한 .. 2025. 7. 21.
청산리 대첩과 항일 무장투쟁의 김좌진 장군 김좌진(金佐鎭, 1889년 11월 24일 ~ 1930년 1월 24일)은 대한제국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의 군인이다 청산리대첩의 위대한 승리 김좌진 장군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조선의 장군이다. 그는 청산리 대첩을 이끌며 독립군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였고, 철저한 무장 준비와 불굴의 의지로 조국의 자주권 회복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었다.김좌진은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담대한 성격으로, 부잣집의 도련님이었지만 사회 불평등과 일제의 침략에 분노하는 정의감이 강한 소년이었다. 그는 18세 때부터 계몽운동과 애국계몽단체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일찍이 신교육을 받아 민족의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20대.. 2025. 7. 20.
억압된시기에 억압받던민족의 저항 한용운 (님의침묵) 한용운(韓龍雲, 1879년 8월 29일 (음력 7월 12일) ~ 1944년 6월 29일)은 일제강점기의 시인, 승려,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청주. 호는 만해(萬海)이다 님의 침묵 억압받던 민족의 희망과 저항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시인이자 승려, 독립운동가로서 깊은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일제의 압제 속에서도 글로써 민족의 영혼을 일깨우고, 행동으로 독립을 실천한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의 시집 『님의 침묵』은 단순한 문학 작품을 넘어, 억압받던 민족에게 희망과 저항의 상징으로 읽혔다.한용운은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였으며, 한문과 불교 경전에 능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승려가 되기 위해 설악산 오세.. 2025. 7. 20.
만인의 자유와 권리를 외치다. 정치인가문의 독립운동 이회영 일가 정치인가문의 독립운동가이회영(李會榮, 1867년 4월 21일 (음력 3월 17일) ~ 1932년 11월 17일)은 대한제국의 교육인, 사상가이자 일제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가이다.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며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위대한 애국지사이다. 그는 양반가 출신으로 높은 관직과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온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가 평생 보여준 행적은 명예도, 이익도 아닌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한 철저한 헌신이었다.이회영은 조선 최고의 명문가 중 하나인 경주 이 씨 집안 출신이었다. 그의 부친은 조선 말기의 고위 관리였으며, 6형제 모두가 뛰어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당시 집안은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지주로, 수천 석의 재산을.. 2025. 7. 19.
조선인의 희망 조용한 실천자 최재형 조선인의 희망 조용한 실천자 최재형최재형(崔在衡)·최도헌(崔都憲)이며, 러시아식 이름은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Цой Пётр Семёнович)이다. (1860.8.15~1920.4.5)조선후기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러시아제국의 군인 조선인의 희망 숨은 영웅최재형(崔在亨, 1860~1920)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조선인의 희망이었던 자선가이며 애국지사였다. 그는 조선이 가장 어두웠던 시절, 러시아 연해주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후원하며 이름도 남기지 않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였다.그는 함경도 경원에서 가난한 노비 출신의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다. 극심한 가난 속에 살았지만, 어린 나이부터 총명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아이였다. 가족과 함께 굶주림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고, 그.. 2025. 7. 19.
역사의 혼을 깨우는 단재 신채호 혼을 깨운 붓끝, 신채호의 각성 신채호는 1880년 충청남도 대덕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비범한 총명함으로 이름을 알렸고, 성균관에서 수학하며 유교 경전을 정통하게 익혔다. 그러나 그는 전통적인 학문에만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이 처한 시대적 위기를 감지하며, 새로운 사상과 학문에 눈을 뜨게 된다. 열여덟의 나이에 독립신문을 읽고 민족의 현실을 처음으로 자각했으며, 그날부터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질 각오를 하게 된다.그는 독립협회 활동에 참여하며 민중 계몽운동에 뛰어들었고, 당시 흔치 않던 민중 집회에서 직접 연설을 하며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당시의 글과 말들은 형식보다는 진심에 가까웠고, 그는 처음부터 '지식인은 말만 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행동으로 말해야.. 2025.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