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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이이의 어머니이자 스승,조선의 예술인 신사임당 예술과 덕성을 함께 지닌 여인1504년강릉 외가에서 태어난 신사임당은 본명 신인선, 사임당은 그녀의 호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조용한 성품을 지닌 그녀는 당대 드물게 부친에게서 유학과 한문, 시서화 등 모든 학문을 교육받을 수 있었다. 특히 외할아버지 집에는 고서와 명화, 문방사우가 가득했으며, 신사임당은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와 그림, 자수를 익히며 예술혼을 키워갔다. 열두 살에 지은 시와 그린 포도 그림은 이미 어른들 사이에서 감탄을 자아냈고, 한문도 능숙히 구사해 부친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글을 배울 정도였다. ‘여자이지만 문장과 덕성은 군자에 가깝다’는 평이 따랐다. 시어머니를 위해 바느질한 밤 열일곱에 율곡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와 결혼한 그녀는 한 번도 시댁살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특히 시어머.. 2025. 7. 24.
백성을 위한 사랑의 명의 동의보감의 저서 허준 허준(許浚, 1539~ 1615. 10. 9)은 조선 중기의 의관·의학자이다. 양반이 아닌, 백성을 위한 의원1539년, 조선 중종 34년. 허준은 서울 동대문 인근에서 평민 출신의 중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의관 집안으로, 아버지 허론은 관청에서 의술을 펼치는 관상감 소속 의원이었고, 허준도 자연스럽게 의술을 배우며 자랐다. 그러나 신분의 벽은 높았다. 유교 사회에서 중인은 관직으로의 진출이 제한되었고, 의술은 양반 계층에서 천하게 여겨지는 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준은 일찍부터 “병이 있는 자는 모두 귀하다”는 철학을 품고, 명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아닌 실력과 진심으로 조선 최고의 의원이 되어간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환자의 손을 잡다 젊은 시절 허준은 지방 관.. 2025. 7. 23.
조선의 개혁을꿈꾸던 선비 백성에대한 사랑을 목민심서로 정약용 정약용(丁若鏞, 1762~1836 4.7)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이다. 2012년, 다산 탄생 250주년을 맞아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다. [3]조선의 개혁을 꿈꾸던 젊은 선비1762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난 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자 개혁가였다. 그의 가문은 남인 계열로 학문과 청빈한 삶을 중시했으며, 어린 정약용은 일찍부터 유교 경전을 익히며 총명함을 드러냈다. 15세에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18세엔 성균관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유학적 관념에 안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실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바라보았고,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실사구시의 철학을 품기 시.. 2025. 7. 23.
조선최초의 정규유학생에서 임시정부 외교사령탑 그리고 월북까지.. 김규식 김규식 (金奎植, 1881. 1. 29~1950.12.10) 학자·종교인·교육자, 독립운동가·통일운동가·정치인·학자·시인·사회운동가, 교육자, 종교인 서양 문명과 조선의 미래를 동시에 껴안은 청년1881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김규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주목받았다.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의 눈에 들어 그와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며, 조선 최초의 정규 유학생 중 한 명이 된다. 김규식은 어린 나이에 타국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근면함과 신념으로 미국 남장로교 신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에게 서양은 단순한 선진 문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선을 바꿀 가능성이자, 언젠가 고국을.. 2025. 7. 22.
신념하나였던 광복군 사상계를 통해 진짜 독립을 준비하다 장준하 장준하 (張俊河, 1918.8. 27~1975. 8.17) 독립운동가,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사회운동가 신념 하나로 일어난 청년 1918년 경기도 의주군(현 파주시)에서 태어난 장준하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조국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그는 일본의 교육을 받으면서도 늘 ‘나는 조선인이다’라는 자각을 버리지 않았다. 도쿄 육군지원병학교에 입학한 그는 일본의 황국신민으로 길러지기를 거부했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던 중, 그는 결단을 내렸다. 1944년, 그는 학도병으로 위장 입대해 탈출을 감행하고 만주를 거쳐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향한다. 이 선택은 생사를 건 도전이었고, 조국을 위한 투신이었다. 조국행 탈출, 죽음을 건 13일 19.. 2025. 7. 22.
양반의아들 오산학교를 설립 빛나는 삶의방식 이승훈 이승훈 李昇薰, 1864. 3. 25 ~ 1930. 5.9)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양반의 아들, 민중의 길을 걷다1864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이승훈은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 가문의 아들이었다. 그의 집안은 상당한 지위를 누렸지만, 어린 시절의 이승훈은 권위보다 정의와 진실에 끌리는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며, 유교 경전을 통달한 인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을사늑약까지 이어진 조선의 멸망 앞에서, 그는 특권을 누리는 삶이 아닌 백성을 위한 삶을 결심하게 된다. 특히 을사늑약 체결 소식을 듣고 그는 밤새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나라가 없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그는 그 질문 앞에서 인생을 바꾸.. 2025. 7. 21.